성경에는 어린 아이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암몬 족속의 신인 몰렉 숭배에 대한 경계를 기록하고 있다.(레 20:1-5) 어린 아이를 ‘불을 통과시켜서’ 바쳤던 이런 인신공양 의식이 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까지 파급되어 유다왕 아하스는 그의 자녀를 이런 희생제물로 바치기까지 한 기록이 있다.(왕하16:3)
프랭클린 페인 주니어는 “의료의 성경적 접근”이란 책에서 이런 구약 시대의 자녀 희생을 오늘날의 낙태와 관련시키고 있다. 자녀 희생을 통해 몰렉으로부터 얻는 부와 쾌락, 그리고 권력이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하고자 한 종교적(이교적) 행태였다면, 오늘날 낙태야말로 성적 쾌락과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 활동이란 권력지향의 욕망을 드러낸 종교적(이교적) 행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많은 낙태가 간음을 무마시키기 위해 행해지고 있다면 이것은 성적 욕망의 행위이고,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면 부를 탐하는 행위이며, 사회적 활동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권력(힘)에의 욕구에 다름 아닐 것이다. 무엇엔가 몰두되는(driven) 인간 자체의 욕망의 양식이 우상 숭배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보면 낙태는 매우 종교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말은 결국, 낙태를 시술하는 일이 오늘날 병원에서 의사가 행하는 일이 되었다는 점에서 현대의 의료 행위가 종교적 행위에 다름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많은 현대인들이 몰렉숭배에 빠져 있는 셈이고, 의사는 몰렉 숭배를 돕는 사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낙태와 같은 부정적인의료 행위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의료 행위 속에서도 의료는 종교적인 행위이다. 환자들은 단순히 육신의 질병 제거란 자신의 필요만을 가지고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불안과 공허감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간절한 필요 속에는 소망과 욕구가 담겨 있다. 의사 앞에서 환자는 정직할 뿐만 아니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태도가 있다. 성경에서 많은 병고침의 사례가 제시되는 것은 그런 점에서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리고 소경에게 예수님이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보기를 원하나이다.”(눅18:41) 라고 답했을 때, 이 단순한 외침 속에 소경의 애절한 소원을 읽을 수 있다.
의료 행위가 종교적이라는 사실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있다. 그는 의사였지만 그의 글 속에 한번도 자신의 (기술적인) 의료 행위로 병을 고친 사례를 기록한 적이 없다. 성경에는 수많은 치유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고, 또한 그가 의사로서 선교 활동에 많은 부분, 의료 행위를 복음 전파의 도구로 사용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말하자면, 성경은 본질적으로 병고침이라는 것이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영적인 문제임을 말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병고침이란 의료 행위가 유사이래로 종교와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극히 최근(불과 150 여 년)의 일일 뿐, 그 근본은 여전히 종교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오히려 현대의 의료는 과학주의의 옷을 입고 이전 보다 더 강력한 종교적인 힘을 발휘한다. 오늘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정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대제사장의 위치까지 와 있는 듯하다. 아무리 인간의 양심과 정직을 내세워도 의사의 소견 앞에서는 무력하다. 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과학을 신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도 말이다. 물론 과학의 법칙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만, 과학주의는 인간의 산물이란 점을 사람들은 종종 잊고 있는 듯하다. 결국, 의사는 그 전문적인 지식으로 인해서 이전 시대와는 비할 데 없는 높은 권위를 누리게 되었고, 의사가 입는 옷(가운)은 그 어느 때보다 거룩한 사제복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기서 크리스쳔 의사의 중요성이 있다고 본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육신의 질병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허기를 함께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이고, 의사는 이들의 육신의 질병뿐 아니라, 이들의 영적인 공허를 터치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크리스쳔 의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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