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롬 12:2)
봉준호가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영화 감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기생충을 보았을 때, 매우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고발하려면 부자를 나쁘게 그리고 가난한 자를 선하게 그려야 하는데, 기생충은 그 반대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디테일 면에서 현실을 반영한 듯 하면서도 전혀 사실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자집의 지하에서 기생충처럼 생존한다는 설정 자체가 거의 판타지 수준이 아닌가. 그리고 후반부에 전개되는 파티 장면에서의 엽기적 살인은 도저히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직한 사건들이 아니다. 혹자는 이것을 블랙코메디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선악이 도치된 이런 류의 블랙코메디에 찬사를 보내는 심리는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이것은 오스카가 외면한 2019년의 빼어난 수작들을 생각하면 금방 그 답이 나온다. 이를테면 '저스트 머시'(Just Mercy), '다크 워터스'(Dark Waters), '히든 라이프'(Hidden Life) 같은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이미 세간에 알려진 실화들을 바탕으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정의를 추구해 가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영화가 다룬 내용들은 인종차별, 대량 학살, 낙태, 성매매, 대기업의 횡포, 또는 다른 각종 악에 대항하는 것들이다. 정의를 추구하고 약자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소위 진보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던가. 그간에 각종 권위 있는 영화제들의 성향이 좌파 진보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위의 세 작품이 오스카의 단 한 부문의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것은 매우 의외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영화 기생충이 주목 받은 것은 오히려 '정의'에 대한 열망이 아닌 것, 곧 '정의'라는 화두 속에서 그 틀을 벗어던지고 다양한 모습의 상징적 정의를 그려내려고 한 점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바로 이 시대가 무의식 속에 깊이 간직한 포스트모던이란 괴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모던은 한물 간 풍조라고 생각한다. 30년 전만 해도 필자의 기억으로는 종로서적 한 켠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써 붙인 섹션이 존재할 정도로 붐이 일었지만,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한물 간 것처럼 잠잠하니 말이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지금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표제를 달고 책들이 등장하거나 대학에서 과목이 개설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한물 간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 세대에 대세로 자리잡고 편만해버렸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개성이라는 말로 이미 TV 광고나 영화, 미술, 음악, 건축 등 모든 문화의 양식 속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어 굳이 그런 타이틀을 내걸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서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바로 네가 느끼는 대로 즐기라는 포스트모던식의 주관주의에 다름 아니다.
세상은 점점 단선적인 진리나 정의를 외면하고 있다. 십계명은 더 이상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이를테면, 간음하지 말라고 한 계명은 '서로 합의 하면 무엇이 문제냐'는 식으로 외면 받고 있다.) 정치가들조차 '공정'이란 그럴듯한 수사로 '법치'와 '정의'를 짓밟고 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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