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크리스쳔뷰/시사

왜 실패한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은 계속될까 2

사회주의 리얼리즘 조각상

역사에서 실패로 입증되어 가는 사회주의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인간의 시기심이라는 심리적 노이로제 현상이라고 한 자유주의 철학자 미제스의 진단을 앞서 언급한 적이 있다. 여기에 더해서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열망하는 또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더불어 함께 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꿈 때문이다. 역사에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근대의 문을 연 계몽주의는 개인의 천부적 인권과 자유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개인주의는 나쁜 것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류는 언제나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이상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외톨이로 살아갈 수 없고, 언제나 공동체적인 삶 속에서 자아가 성숙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근대 철학자들 중에는 가족 공동체처럼 사회가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적 연대를 이루는 체제가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공산주의 문을 연 마르크스의 사상이 바로 그런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성경에서도 사도행전에 초대교회의 원시 공산사회가 등장하는데, 초기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소유를 모두 사도들에게 가져와 함께 공용하는 공동체의 삶을 영위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르크스는 이런 초대교회 모델을 차용하여 궁극적인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가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성경의 초대교회 모델을 성취하고자 한 열망은 좋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실천 동기는 초대교회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공산 사회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로 인해 구원 받은 그 감격 때문에 자신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개인의 소유를 자원해서 포기한 것이었지만, 마르크스는 인간의 이기심의 근원을 타락한 인간 자체의 내면으로 보지 않고 사유재산이란 물적 조건으로 보았고, 그래서 사유재산 제도를 없애면 인간의 이기심이 제어되어 평화로운 이타적 공동체가 올 것으로 보았다. 결국, 이런 사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사유재산을 고수하는 계급과의 투쟁이 불가피하고, 그 투쟁에서 승리하면 무산 계급의 평등한 이상적 공동체, 곧 공산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마르크스를 추종한 철학자 중에 이탈리아의 지오반니 젠틸레가 있다. 그도 역시 공동체적 삶의 모델을 따라 인류의 이상적 체제를 구상한 열렬한 사회주의자였지만, 그의 멘토인 마르크스와는 다른 방향으로 그것을 구현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의 경우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계급투쟁을 내세웠지만, 젠틸레는 국가라는 정체성에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젠틸레에게 있어 모든 사적인 행동(이기적 행동)은 사회 공헌에 집중되어야 하고, 사익과 공익 사이에 구분이 없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젠틸레에게는 국가야말로 그런 공공성을 주도적으로 구현하는 행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선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좌파 사회주의 이론가의 첨병이었던 젠틸레의 사상을 그대로 역사에서 실천한 사람이 바로 베니토 무솔리니였다. 초기 파시즘 이론 중의 하나인 무솔리니의파시즘 원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모든 것은 국가 안에 있다. 어떤 존재도 국가 안에서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했는데, 이는 젠틸레의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

 

1930년대 독일의 파시스트들을 나치(Nazis)라고 불렸는데, 이는국가 사회주의자라는 용어의 축약형이다. 파시즘이나 나치즘을 극우파로 알고 있는 일반인들이 좌파 사회주의자 젠틸레가 바로 파시즘과 나치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일이다. 그래서 좌파들이 젠틸레를 잊혀진 사상가로 치부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는 이런 파시즘으로 향하는 사회주의의 망령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다. 1984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마리오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미국을 "정부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확대 가족"에 비유한 경우라든지, 2012년 미국 민주당 전당 대회 슬로건인 "정부만이 우리 모두가 속한 유일한 곳이다라는 것들은 여전히 좌파 사회주의자 젠틸레의 사상을 차용해온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어떤가. 우리도 여전히 민족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을 내세워 국민들을 통합시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단순히 애국심에 입각한 민족주의(원래의 국가주의)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혈연 지연 학연에다 반일친중, 반 외세 등의 프레임까지 만든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곧 이영훈 교수의 말대로 반일 종족주의로 국민을 뭉치려고 하는 것은 곧바로 좌파 사회주의의 길인 동시에 전체주의적 파시즘의 문으로 들어서려는 것이다.

 

물론 인류의 행복은 공동체적인 삶 속에서 구현된다. 그러나 진정한 공동체는 인간의 내면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러나올 때 가능하다. 만약 인간 외부의 제도적 장치로 그것을 강제하는 순간, 공동체는 전체주의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지만, 천부인권에서 도출되는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 사상은 시지포스처럼 실패하는 길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