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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쳔뷰/시사

'청와대 광야교회'를 위한 변명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청와대 광야교회>를 향한 한국 교계의 시선은 양분되어 있다. 반대 입장을 가진 논리의 핵심은, 교회가 좌우 진영논리에 끌려 들어가서 이념의 대변자가 되는 것은 교회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교회가 태극기 집회와 연합하여 수구 세력을 도와주는 것은 역겹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시각은 몇 가지 그릇된 전제를 깔고 있다.

 

그 첫째는 한국은 정교분리 국가이기 때문에 교회가 정치적 이슈에 뛰어드는 것을 금기시하려는 태도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정교분리는 잘못 해석되고 있는 용어이다. 한국은 정교분리’, 즉 '정치와 종교의 분리' 국가가 아니라 국가와 종교의 분리국가이다. 만약 한국이 정교분리 국가라면 3.1운동을 주도한 기독교 세력도 잘못된 것이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제헌의회를 기도로 시작한 것에서부터 모든 기독교 학교들이 펼친 교육, 의료, 구호, 선교 활동도 문제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묻는 전국 목회자 1만여명의 시국선언도 정교분리의 위반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청와대 광야교회>는 지금의 문재인 정권이 우리 헌법 정신인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위기 의식의 발로로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국민 건강의 위협에 대한 위기 의식으로 나타난 목회자들의 시국 선언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위정자가 그릇된 길을 갈 때에 성직자들이 예언자적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둘째는 보수와 보수주의(수구꼴통)를 구분하지 않는 태도이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좌편향적 성향을 지닌 지식인들이 이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2019년 조국 사태로 광화문 태극기 집회와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로 양분된 적이 있었다. 이 때, 어느 대학생이 광화문 집회에서 조국을 성토했는데, YTN 모 앵커가 SNS에서 이 청년을 수구 꼴통으로 비아냥거렸다가 사과한 적이 있다. 물론 과거에 안주하여 웰빙만을 추구하는 수구 보수도 있지만, 조국을 성토하는 것이 어떻게 수구 보수일 수가 있는가. 지금도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을 수구 세력으로 알고 있지만, 태극기를 든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1987년도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킨 민주화 세력, 곧 당시 사회 초년생들이었던 넥타이 부대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이후에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민주화 세력 속에 종북 세력이 신분을 숨기고[세탁하고] 암약한 결과가 지금의 문재인 정권 탄생을 이끌었다는 것이 현재 몇 몇 전향한 인사들이 고백하고 있는 바다.)

 

대체로 한국에서 보수 세력을 수구꼴통으로 인식하는 그 근거에는 좌파 세력들과 북한 대남 전략세력들이 우리 근세사를 계급투쟁적 이분법 프레임을 만들어 선동한 영향이 크다. 이를테면, 우리 근대사를 민족 세력과 반민족 세력의 투쟁의 과정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반일이 아니면 무조건 친일로, 노동자 서민이 아니면 갑질하는 재벌, 공동체 중심이 아니면 개인주의, 평화 세력이 아니면 반공주의자, 진보가 아니면 수구 보수 등으로 정치적 선동을 해왔기 때문에(주로 전교조 교사들이 이런 프레임으로 학생들을 교육시켜 왔다) 모두 한국의 보수는 마치 수구꼴통 세력인 것처럼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한민국을 선진국 대열로 이끈 세력들은 반공 자유민주주의와 재벌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며 땀흘려 노력한 사람들이다.(그리고 자본주의가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것도 거짓 논리이다. 실제로 한국의 하층 서민들은 자본주의가 덜 발달된 나라의 중산층 수준이라는 것은 간단한 통계에서도 밝혀지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에게 이런 식의 혼란은 결국 역사 인식에 대한 그릇된 고정 관념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이영훈 교수가 쓴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발간되어 실제 역사의 자료 발굴과 고증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 시절 위안부 문제라든지, 한반도 수탈론, 강제 징용, 독도 문제 등이 실제 우리가 익히 배워 온 사실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여전히 대다수 좌파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 책에 대해서 일본이 우리의 철천지 원수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뭐 이 따위 통계수치 몇 개로 퉁치고 넘어가려고 하나하고 단칼에 찢어버리는 반응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소위 지식인들조차 이영훈 교수의 연구에 대한 논증적 반론이 아니라 철저히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며, 이들이 그 동안 종북좌익 사학자들이 파 놓은 이분법 프레임에 골수까지 빠져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또한 금할 수 없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그토록 철저히 친일을 저주하면서도 수천년 간 일본보다 더한 중국으로부터의 핍박과 수모에는 눈 감고 친중사대를 버젓이 일삼는다는 사실이다.

 

이상의 두 가지 그릇된 전제를 제거하고 나면, <청와대 광야교회>는 한국의 어느 교회도 하지 못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읽을 수 있다. 말하자면, <청와대 광야교회>가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며, 현정권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대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인데,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슬로건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자체가 기독교적 가치로 탄생된 이념이기 때문이다. 굳이 러셀커크의 보수의 정신이라는 책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기독교적 천부인권 사상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부흥하고 많은 교회들이 존재하게 된 그 근거가 바로 무신론 공산주의를 반대한 반공과 자유 민주주의이다. 때문에 자유 민주주의를 허물려고 하는 세력에 대해서 누구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앞서 항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최근 자유민주주의를 허물려는 좌파 진영은 소위 차별금지법을 입법 발의하여 앞으로 동성애를 반대하거나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면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제 교회 강단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설교하면 목사들이 잡혀가거나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이 도래할 수도 있다.(이미 동성애 반대 목사를 체포해 간 나라도 있다.) 이런 현실을 목전에 두고 교회들이 정교분리 운운하며 강단에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숨긴다면, 이들이야말로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순응했던 성직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