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크리스쳔뷰/시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고

동성애 문제를 이슈로 삼을 때, "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23:24) 짓을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자면,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 문제 같은 사소한 문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교회 내의 불의에는 눈을 감고 있느냐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은 동성애나 무슬림 난민 같은 문제라기보다는 교회 내의 분열이나 정의롭지 못한 것, 긍휼 없음,  혹은 교회 지도자들의 탐욕, 부도덕함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동성애 문제도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지금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문제부터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동성애자들을 소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교회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용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금 교회가 자체적으로 부도덕한 문제들이 심각한데, 왜 동성애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엄격한지 모르겠다고 냉소하는 사람조차 있다. (* 성경의 가르침은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거나 일부 교회일 수 있다.)

 

언뜻 들으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지금 교회가 부패해 있고, 교회 지도자들의 부도덕함이 만연해 있는데, 뜸금없이 동성애 문제에 핏대를 올리느냐는 것인데, 이런 주장은 마치 인플레로 화폐가치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위조지폐를 단속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식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교회의 부패나 그리스도인들의 부도덕은 그 자체로 죄이다. 그래서 그런 현상이나 그것을 행하는 자는 이미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안다. 그래서 최소한 그것을 드러내놓고 행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부도덕의 문제가 발생하면 이미 법적인 문제가 되거나, 또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된다그런데, 동성애는 죄된 행위임에도 버젓이 죄가 아니라는 듯이 드러내는 것이 문제이다. 거리에서 행하는 퀴어 축제를 보라. 버젓이 청소년들이 보는 앞에서 부도덕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떳떳해 하지 않는가.

 

부도덕한 짓을 죄책을 갖고 행하는 것과 그것에 대한 죄책이 없는 경우는 매우 다르다. 때문에 이미 교회 내의 부도덕은 누구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 하에 저질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탄의 대상이 되고, 또 어떤 형태로든 책임과 대가가 따라야 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동성애는 부도덕한 행위를 부도덕한 행위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문제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창조 질서를 허물어 기독교 자체를 말살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비유적으로 말한 것처럼, 인플레이션 때문에 돈 가치가 하락하여 위조지폐가 나돌고 있을 경우, 먼저 그 위조지폐부터 엄단하지 않고, 오히려 돈 가치 회복을 위해서 경제 체질을 바꾸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과연 옳은 대처일까? 물론 인플레이션이 심하면 근본적으로는 경제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어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진정되면 위조지폐도 서서히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거리의 현행범을 방치하면서 사회 구조악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꼴이다.

 

그러니까, 당장 눈 앞에 위조지폐가 나돌고 있는데, 이것을 내팽개친 채로 경제의 체질 개선을 우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동성애자들이 청소년들이 있는 거리를 활보하면서 자신들의 부도덕함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교회가 소홀히 하고, 오히려 교회의 부패와 부도덕한 문제 해결부터 우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인 것이다.

 

말하자면, 동성애 문제는 하루살이에 불과하고, 교회의 부패는 낙타라고 비유하는 자체가 동성애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거나, 은연중에 동성애를 소수자 인권 차원에서 옹호하려는 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 지금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부패했다거나 교회 지도자들이 부도덕하다거나 하는 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교회의 극히 일부의 일탈이 침소봉대된 것이다. 지난 한국 교회가 국가와 사회에 끼친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크다. 지금도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 사학들의 교육 기관에서부터 기독교 병원, 구제 사업인 기독교 복지 기관 운영 등 국가 기관을 대신하여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여 교육과 의료, 구제 사업 등으로 사회에 기여해 왔다. 오히려 지금의 기독교가 멸시 당하는 것은 세계적인 풍조로서의 반기독교적 문화 때문이다. 전통적 가치 질서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던 풍조나 상대주의적 세계관이 주류 문화로 부상함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어 가는 경향 때문에 교회가 유독 그 비판의 표적이 된 것이지, 교회의 타락이나 부패가 그 주된 이유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