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인사이드아웃

노예제도 속의 복음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으시고 저의 뚫은 귀를 보십니다"(시 40:6, NIV)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는 종의 제도가 있었다. 이것은 이방인,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의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구제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비참한 상황에 빠진 이방인이나 동족이 있으면 그들을 종으로 받아들여 그들에게도 할례를 베풀고 같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삶을 영위하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7년째 되는 해에는 자유롭게 방면시켜 주었다.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의 종의 제도는 여느 이방 나라들의 인신매매 형태의 노예제도와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종으로 들어와 주인이 짝 지어 준 배우자와 결혼을 하고 또 자식을 낳으면, 7년 째 종 생활에서 방면될 때에도 자신만 방면될 수 있고, 배우자나 자식들은 방면될 수 없고, 주인의 소유로 남았다(출 21:4). 그것은 종이 처자와 함께 방면되면 그 종의 가족이 자립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되기 때문에 주인이 그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나 7년 차에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종이 그 자유를 누리지 않고, 그 가족을 위해 기꺼이 주인의 집에서 종살이를 계속하겠다고 맹세하면, 그 종은 문설주에 자신의 귀를 대고 뚫어 종신토록 그의 주인을 섬길 수 있었다(출 21:6).

 

이런 구약적 전통은 매우 시사적인 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약에서 바울이 비록 우리가 자유인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설파한 그것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7:22).

 

구약에서 종이 자유의 몸이 되어도 자신이 자유를 포기하고 기꺼이 상전의 종이 되기로 자처하는 그 동기가 대부분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주인의 은혜에 대한 감사 때문이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꺼이 우리의 인간적인 자유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로 자처하는 그 동기 역시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헌신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진정한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방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속될 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세상에서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라는 역설적인 말씀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7:22).

 

www.youtube.com/watch?v=JfZh_ozxx7E&t=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