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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쳔뷰/시사

보수와 보수주의를 혼동하지 말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지 3년여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부 국민들 생각에는, 비록 박근혜 탄핵이 좀 과한 면은 있었지만 어떻든 수구 적폐 청산이란 불가피성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최근 조선일보 윤 모 교수의 칼럼에서 박근혜 탄핵은 권위주의적 박정희 패러다임을 청산한 것이었다든지, 동아일보 박 모 논설주간은 박근혜가 권력을 사유화하여 국민의 신임을 저버렸기 때문에 탄핵받아 마땅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박근혜 정권을 옹호하는 것은 퇴행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나 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탄핵 정국을 가만히 복기해 보면, 모두 어처구니가 없는 것들이다. 굳이 태블릿 PC의 허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박근혜가 최순실과의 경제 공동체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심지어 세월호 7시간까지 탄핵 사유에 버젓이 올렸지 않았나! 대통령이 자당 공천에 관여하는 것은 지금 문재인도 방법만 다를 뿐 동일하게 관여하고 있고, 기업체 후원 요구나 특활비 수수도 이미 현 정권에서도 하고 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에 근거로 삼았던 국정농단에 대한 증거들은 이후의 형사 재판과정에서 모두 배제되었고, 현재까지 재판에서 내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형기는 모두 탄핵재판소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승마 뇌물죄와 공천관련 직권남용, 특활비 수수 같은 별건수사로 받은 것들이다.(필자의 말에 의구심이 있다면, 탄핵 재판과 그 이후의 박근혜 재판 과정을 백서 형태로 발간한 채명성 변호사의 '탄핵 인사이드 아웃'이란 책과 아래 펜앤마이크 인터뷰 기사를 참고하길 권한다.)

 

때문에 법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비록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떤 비리가 있었더라도 탄핵을 당할 일은 아니었고, 그 비리들은 퇴임 후에 수사 받았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다. 이런 분명한 법적 결론이 났음에도 일부 국민들은 여전히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권위주의 청산 차원에서라도, 혹은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일이어서 박근혜 탄핵은 어쩔 수 없었다는 강변을 한다는 점이다.

 

최근 마이클 브린 전 서울외신기자클럽의 회장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국의 정치인들은 너무도 자주 법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지적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일전에 있었던 귀순 어부 2명에 대한 북송의 경우를 들었는데, 헌법과 국제법에 분명히 위반되는 결정을 정부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자행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여론에 대한 평가였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은 97세까지 감옥에 있어야 하지만, 정치인을 포함한 국민 어느 누구도 그녀가 97세까지 감옥에 갇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를 언급하면서, 그녀의 형기는 법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권력자들이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정치적 결단처럼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 그렇다면, 한국인들에게 이런 초법적, 혹은 탈법적 심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런 심리의 기저에는 좌파의 그릇된 이분법적 역사 인식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다시 박근혜 탄핵 사건에서 살펴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것은 최순실이란 사인(私人)에게 국정을 맡겼다든지, 20대 총선 때의 공천 파동이라든지, 창조 경제 등의 사업을 위한 기업체 후원이나 국정원 특활비 수수 등과 같은 비리에 연루된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자유한국당의 일부 세력이나 일부 국민들은 그런 탄핵의 고리를 끊어야지만 수구 보수 정당의 이미지를 벗고 진정한 개혁 보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로 탄핵의 사유가 되었던 그런 비리들은 이후의 형사 재판과정에서 모두 배제되어버렸고,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별건 비리들을 가지고 지금 박근혜를 구속 상태에 두고 있다.(때문에 최근 윤석렬 검찰총장이 갑자기 우파 보수 세력에 우호적인 것은 탄핵을 당한 박근혜 등에 비겁한 칼을 꽂은 그 원죄를 씻으려는 태도로 보인다. 왜 그인들 우파로의 정권교체 이후에 닥칠 후환이 두려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권은 공무원 연금을 개혁하면서 자파 세력인 공무원들로부터 찍히면서 원군을 잃어가던 차에 노동개혁을 밀어부치려다가 참여연대나 민노총의 반발을 샀다. 거기에다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막고자 했던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나 이석기의 통진당의 해체 및 개성공단 폐쇄 등과 같은 강력한 좌파 척결로 인한 전교조, 민노총 등 종북 및 친북 세력들의 집요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북한의 전략적 대남 전술에 휘말려 탄핵정국으로 유도된 면이 강하다.(박근혜 탄핵 1년 전 쯤에 북한의 노동신문에 이미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사설이 실리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박근혜 탄핵은 수구 적폐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강력한 개혁을 추구했기 때문에 탄핵의 덫에 걸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다수 국민들이 박근혜 탄핵은 불가피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각인된 이분법적 역사 인식 때문이다. , 민족과 반민족이란 이분법적 대결 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여러 프레임들, 이를테면 반일과 친일, 자주와 외세, 서민과 재벌, 평화와 전쟁, 진보와 보수, 공동체와 개인 등과 같은 좌파적 프레임에 세뇌되어 온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시도했던 여러 개혁들, 이를테면 연금 개혁이라든지 노동 개혁, 통진당 해산 등과 같은 것들은 모두 개혁적 보수 가치를 지키려 했던 것들인데, 일부 관행처럼 해 오던 공천 개입이나 기업체 후원 요청 등과 같은 사소한 수구적(보수주의적) 행태 때문에 건전한 보수 자체가 도매금으로 매도 당한 면이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박근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실제로는 매우 개혁적 정권이었지만, 박정희의 권위주의 정권의 연장이라는 의식이 여전히 한국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어떤 개혁적 정책을 취해도 그것은 기득권 수구 세력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역사적으로 반민족적인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각인된 의식 하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보수를 무조건 보수주의(수구)로 혼동하게 된다. 얼마 전에 YTN의 모 앵커가 조국 전 장관을 규탄하는 집회에 마이크를 잡은 젊은이를 수꼴이란 말로 비아냥거린 점이나, 최근 조선일보 윤 모 교수의 칼럼에서 박근혜 탄핵은 권위주의적 박정희 패러다임을 청산하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좌파적 이분법 프레임에 굳은 사고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다.

 

그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전자에 속하기만 하면 모두 정의이고 도덕적이며, 후자는 모두 청산해야 할 적폐로 몰아버리기 때문에, 바로 이런 명분주의에 빠지면 초법적이고 탈법적인 행태도 서슴없이 용인해 버리려고 하는 심리가 한국인들의 심성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가 아니면 무조건 보수주의(수구)로 치부하는 이런 계급투쟁적 좌파 프레임이 보수와 보수주의를 혼동하는 것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반공과 반공주의를 혼동하는 것도 민주화 이후의 한국인들이 세뇌되어 온 전형적인 오류들 가운데 하나이다.

 

생각해 보라.

 

최근 북한의 직접 지령을 받은 간첩이 잡히는 세상인데도, 종북적 인사들에 대한 비판을 하기만 하면, 철 지난 색깔론이라고 떠들어대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이제 반공과 반공주의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간첩이 버젓이 활개치고 다니는 위험한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의식 때문에,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탄핵 문제를 두고 이견을 노출하면서 분열의 양상을 띠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철 지난 반공주의자 소리를 들을까 봐, 혹은 수구 꼴통이란 덤탱이를 쓸까 봐 서둘러 자기 편의 보스에 돌을 던지고 뛰쳐나가 소위 개혁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형편이 어떤가. 여론은 오히려 이들에게 싸늘하다. 결국, 박근혜 정권이 지키려고 했던 진정한 개혁적 보수와, 탄핵을 야기시킨 보수주의(수구)를 구분하고 이에 대한 반성과 정리가 선행되지 않으면 결코 자유한국당의 문제는 풀리기 힘들어 보인다. 왜냐하면, 대다수 국민들도 보수와 보수주의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은 조속히 탄핵백서라도 발간해서 박근혜 문제를 정리해야만 감옥으로부터의 저주를 풀 수 있을 것이다.

 

www.youtube.com/watch?v=gUgbyeVAz2o&t=455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