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에는 하나님이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친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이 말씀은 언뜻 들으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는 차별적인 말로 들린다. 사실 ‘은혜’라는 말은 차별 없이(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자비와 사랑이란 의미를 가지는데,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조건적이기 때문에 ‘은혜’라는 말의 속성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차별적이지 않다. 그래야만 은혜의 의미에 부합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 편에서의 선별적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먼저 차별없이 은혜를 베풀었지만, 겸손한 자는 그 은혜를 받아 누리고, 교만한 자는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부터 먼저 선제적으로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나 항상 인간 편에서 먼저 그 은혜의 축복을 거절하고 독자적인 길을 가고자 한 교만 때문에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한 것이다.
이 사실을 탕자 이야기 속에서 확인해 보자.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탕진하고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푼다. 이에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불평을 쏟아 놓는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 15:29-30)
언뜻 보면, 이런 큰 아들의 불평은 매우 당연해 보인다. 도무지 인간적으로 보아 큰 아들을 비난할 일이 없다. 그러나 성경은 탕자 이야기 속에서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보다 큰 아들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큰 아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그 답은 큰 아들의 불평에 대한 아버지의 응답에 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31-32)
아버지의 말씀은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는 것과 그래서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말하자면, 큰 아들의 문제는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과 아버지 것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 마디로 큰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누리는 삶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 탕자 이야기의 맏형과 동일한 태도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야기는 바로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매정하게 채근하는 이야기이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 속에서도 동일하게 일만 달란트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탕감 받은 자가 왜 고작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매정하게 채근했을까. 여기에서도 말하자면, 백 데나리온의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 자는 자신이 일만 달란트의 엄청난 돈을 탕감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혜인지를 망각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비단 탕자 이야기의 맏아들이나 백 데나리온의 빚을 독촉한 사람의 경우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일 수 있다는 점이 탕자 이야기의 준열한(radical) 교훈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자신을 배반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 죄를 대속하신 엄청난 값을 치렀지만, 우리가 때로 그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망각하고 살 때가 많지 않은가. 탕자 이야기의 큰 아들처럼 불평하고,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독촉하는 사람처럼 세상의 풍파에 일희일비하며 인색하게 구는 비천한 인생은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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